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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태종 후궁과 아들들
조선 3대 국왕 태종 이방원은 드라마틱한 삶을 살았다. 조선 건국의 일등 공신이었지만 철저하게 권력에서 배제당했고 왕이 되기 위해서 왕자의 난을 일으키고 왕이 되고 나서는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주변 사람 모두를 제거하기도 했다.
태종은 조선시대 역대 왕중에서 가장 많은 후궁을 두었다. 단순하게 왕실의 번영을 위해서가 아닌 정치적인 목적이 컸다고 한다. 태종은 후궁뿐 아니라 많은 여인들을 통해 권력을 잡고 유지했다.
왕자의 난으로 이복형제를 모두 사사시켰지만 태종의 첫 번째 정치적 후원자인 여인은 "개경 작은 엄마"라고 태종이 부르고 믿고 따른 아버지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이다.
태종 이방원과 개경 작은엄마 신덕왕후와 관계는 아주 돈독했다.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자신의 정치적 후견인으로 생각했던것 같다. 조선이 건국되고 신덕왕후의 자식이 세자가 되면서 두 사람 관계는 틀어졌다.
태종의 두 번째 정치적 후견인이 된 여인은 태종의 부인 "원경왕후 민씨"이다. 원경왕후는 태종이 왕자의 난을 일으킬 때 무기와 사병을 준비해주었고 자신의 동생들도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했다.
태종이 왕이 되고 나서 철저하게 배제되었고 원경왕후 동생 민 씨 형제들 모두는 태종에 의해서 사사되었고 아버지마저 비참하게 죽었다.
태종은 계모인 신덕왕후와 부인인 원경왕후와는 정치적 동지에서 정적으로 변질되었고, 왕이 되고 나서 16명의 후궁을 두었고 12남 17녀의 자식을 두었다.
1. 효빈 김씨는 태종의 첫 번째 후궁이다. 원경왕후의 여종이었지만 태종이 왕이 되기 전에 태종의 첩이 되었고 강녕 군을 낳았다. 원경왕후로부터 모진 학대를 받았다고 한다.
원경왕후는 효빈 김씨가 임신을 하자 한겨울에 밖에 두면서 얼어 죽기를 바랐다고 한다. 한상좌라는 사람이 옷을 가져다주어서 살 수 있었다고 한다.
2. 신빈 신씨는 후궁 중에서 자식을 가장 많이 낳았다. 왕자 3명(함녕군, 온녕군, 왕자), 옹주 7명을 두었다. 태종이 후궁들 중에서 가장 사랑했던 여인이었던 것 같다.
신빈 신씨는 태종이 왕이 된 이후 궁에서 원경왕후를 모시던 나인이었다고 한다. 훗날 원경왕후가 죽고 후궁들을 총괄했고 태종이 병들자 간호를 했다고 한다.
3. 의빈 권씨는 최초로 공식적인 간택령을 통해서 간택된 후궁이다. 성균관 악정 권홍의 딸이다. 의빈 권씨가 간택되어 궁에 들어오는 것을 원경왕후가 심하게 반대했다고 한다.
공식적인 행사를 하려고 했지만 하지 못하고 조용히 궁에 들어왔다고 한다. 슬하에 옹주 한 명(정혜 옹주)만 두었고 훗날 세종의 아들 금성대군을 키웠다고 한다.
4. 선빈 안씨는 궁인 출신이었다. 2명의 왕자(혜령 군, 익녕군)과 3명의 옹주(소숙옹주,경신옹주,옹주)를 두었다. 태종이 죽고 나서 아들인 혜령군 집에서 지냈다고 한다.
5. 명빈 김씨는 간택령으로 궁에 들어온 후궁이다. 판 돈녕부사 김구 덕의 딸이다. 태종의 후궁 중에서 가장 높은 지위인 빈의 자리에 있었다. 슬하에 옹 주한명을 두었다.
6. 소빈 노씨도 간택령을 통해서 입궁한 후궁이다. 밀직제학 노구산의 딸로 슬하에 옹주 한 명을 두었고 태종의 후궁 중에서 가장 오래 살았다고 한다.
7. 정빈 고씨는 슬하에 왕자 한 명(근녕군)을 두었다. 다른 후궁들과 달리 기록이 별로 없다. 궁녀 출신으로 태종의 눈에 들어 후궁이 된 듯하다.
8. 의정궁주 조씨는 태종의 며느리인 소헌왕후가 간택을 통해서 입궁시킨 후궁이다. 원경왕후가 죽자 실의에 빠진 태종을 위로하기 위해 입궁했다고 한다. 자식은 없다.
이외에 서경옹주 김씨, 숙의 최씨, 덕숙옹주 이씨, 숙공궁주 김씨, 혜선옹주 홍씨, 신순궁주 이씨, 순혜옹주 장씨, 혜순궁지주 이씨가 있었다. 숙의 최씨(1남 1녀)를 제외하고는 자식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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