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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경왕후 민 씨(이방원 부인), 신덕왕후 강 씨(이성계 부인), 신의왕후 한 씨(이성계 부인)
조선시대는 역사의 기록은 남자 위주로 되어있다. 조선 건국은 태조 이성계가 하였지만 이성계를 도와 건국에 숨은 공로자는 이성계의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와 첫 번째 부인 신의왕후 한 씨와 아들들이다.
신의왕후 한씨는 현모양처의 대명사처럼 남편인 이성계가 전쟁터와 개성에 있을 때 고향에서 자식을 키우고 집안을 살림을 하였다.
신덕왕후 강씨는 이성계가 개성 와서 고려 귀족 집안사람과 정략적인 결혼을 하였다. 당시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나이 차이는 무려 20살가량이었다.
이성계와 신덕왕후의 결혼은 요즘 말로 중혼이었다. 엄연히 신의왕후가 살아 있는 상태에서 한 결혼이기 때문에 법에 어긋나는 결혼이었던 것이다.
원경왕후 민 씨는 이성계의 다섯째 아들 태종 이방원과 결혼을 했다.이방원이 왕이 되는데 커다란 공을 세웠고 자신의 동생들 모두도 이방원을 도왔다.
조선 건국 초기 태조 이성계와 아들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는 데에는 주변에 많은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결정적으로 힘이 된 사람은 자신들의 부인이었다.
신덕왕후는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건국하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고 자신의 아들이 세자가 되게 했다. 원경왕후는 태종 이방원이 왕이 되는데 공을 세웠고 아들인 세종이 조선 4대 왕으로 즉위했다.
두 사람 모두 정치적인 야망을 가지고 있어고 남편을 통해서 실현했다. 신덕왕후는 사후가 원경왕후는 왕비가 된 이후 삶이 비극적이었다.
태조 이성계의 첫 번째 부인이자 정종과 태종의 어머니인 신의왕후가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행복한 삶을 살았을지도 모른다. 조선 마지막 왕까지 모두 자신의 후손이었다.
신의왕후 한 씨 _ 태조 이성계 첫 번째 부인
태조 이성계의 첫번째 부인이고 정비이다. 이성계가 동북면에 있을 때 결혼을 했고 6남 2녀를 낳았다. 이성계가 개성에서 정치적 야심으로 강 씨와 정략결혼을 했을 때에도 신의왕후는 고향인 동북면에서 가정과 집안을 지켰다고 한다.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기 1년 전에 사망했고 정종 때 신의왕후로 추존되었다. 조선 건국전에 사망했기 때문에 첫 왕비는 되지 못했지만 아들들에 의해서 왕후와 왕태후로 추존되었다.
신의왕후의 아들은 조선 2대 국왕 정종, 조선 3대 국왕 태종을 비롯해서 진안대군(방우), 익안대군(방의), 회안대군(방간), 덕안대군(방연)과 경신공주, 경선공주까지 6 난 2녀를 두었다.
신덕왕후 강 씨 _ 태조 이성계 두 번째 부인
신덕왕후 강 씨는 고려 권문세가 집안의 딸이었다. 신덕왕후 숙부는 태조 큰아버지의 사위였다. 강 씨와 이성계의 만남에 관한 일화는 아직까지 전설처럼 전해진다.
그 유명한 우물에서 물을 찾은 이성계에게 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어 주었던 여인이 신덕왕후 강 씨이다. 이성계와 결혼한 강 씨는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첫 번째 부인이 죽고 조선이 건국되자 신덕왕후 강 씨는 조선 최초 왕비가 되었고 자신의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했다. 장성한 신의왕후 소생 왕자들과 정적이 되었던 것이다.
특히 태종 이방원은 신덕왕후를 아주 싫어했다. 왕자의 난 이전에 신덕왕후는 사망했지만 아들들은 모두 사사되어 신덕왕후의 꿈은 여기까지 였다.
이방원은 신덕왕후 묘지석을 모두 뽑아서 청계천 다리 공사 재료로 사용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서자와 적자의 차별을 국법으로 정했다.
원경왕후 민 씨 _ 태종 이방원 부인
원경왕후 민 씨는 태종 이방원의 부인이고 조선의 왕비이다. 이방원이 왕자의 난을 일으킬때 친정 동생들까지 동원해서 승리하게 만든 일등공신이다.
태종이 왕이 되게 모든 지원을 했지만 태종과 갈등을 하게 된다. 태종은 강력한 왕권을 위해서 처가와 외척세력이 강해지는 것을 경계했다.
이러한 이유로 태종은 많은 후궁을 두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들이 즉위를 하면 외척 세력이 되는 민씨 집안을 멸문시켰다.
원경왕후와 태종간 갈등은 마지막까지 화해하지 못했다. 원경왕후의 셋째 아들 세종대왕은 조선 최고의 성군이 되었고 어머니에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