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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 유적 // 풍납토성, 몽촌토성, 방이동 고분군, 석촌동 고분군

잠실을 중심으로 백제 초기시대 유물이 몇 군데 있다. 온조가 위례성에서 백제를 건국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위례성 지금의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이 있는 곳이다. 이때를 한성백제시대라고 한다.

한성백제 유적지

백제는 한성에서 웅진으로 그리고 사비(부여)로 천도를 한다. 한성을 버리고 웅진으로 천도를 한 이유는 고구려 장수왕 남하정책으로 개로왕이 전사하면서 웅진으로 도망가듯 천도했다.

 

개로왕은 고구려 첩자 도림에게 속아 결국은 목숨까지 잃은 무능한 왕으로 묘사되지만 생전에 강력한 왕권을 확립한 나름 능력 있는 임금이다. 백제의 최고 전성기는 4세기 근초고왕 때이다.

 

고구려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 중국요서 지방과 일본의 규슈까지 진출했다고 한다. 이러한 백제 전성기 시대의 유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한성백제 유적이다.

 

풍납토성은 송파구 풍납동 72-1 지역에 있는 토성으로 초기 백제시대 흙으로 쌓은 성곽이다. 전체 길이가 약 3.5km 정도 되는 것으로 추정하는데 일제강점기 홍수 때 우연히 발견된 것이다.

 

본격적인 발굴은 1964년도부터 실시하였고 북쪽 일부 지역이 복원되어 있다. 풍납토성이 건축된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성이 고구려 국내성이다.

 

백제 초기 왕성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1997년 아파트 건설을 위한 공사를 할 때 다량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현재 올림픽공원 내 일부가 복원되어 있어 관람할 수 있다.

풍납토성에서 출토돼 유물을 모아서 전시하는 박물관이 올림픽공원에 있다. 한성백제박물관으로 풍납토성 축조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몽촌토성은 풍납토성보다 규모가 크다. 가락동과 방이동 일대의 자연지형을 이용해서 만들어진 토성으로 총면적이 무려 30만 2,500㎡에 달하고 약 만 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이다.

 

내성과 외성으로 구분되어 있고 성 외곽은 방어용 해자가 있다. 성안에는 남북과 동서를 잇는 도로망이 갖추어져 있다. 백제 초기 왕궁 위례성이 몽촌토성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한다.

 

몽촌토성 내에서는 중국 도자기를 비롯해서 많은 종류의 중국 물건도 발견되었다. 몽촌토성은 전체를 발굴하기는 어렵다. 거의 대부분 지역에 아파트와 빌딩으로 들어서 있다.

 

그래서 정확한 크기는 축측일 뿐이다. 석촌동 고분군은 백제 초기 무덤인 적석총이다. 일제강점기에 조사한 서류를 보면 약 290기 정도가 있었는데 지금은 몇 기 없다. 석촌동이라는 지명이 백제의 적석총 때문에 생긴 것이다.

 

돌이 많은 동내를 뜻하는 석촌동은 백제 돌무덤이 몰려 있어서 생긴 것이다. 돌을 쌓아서 무덤을 만드는 적석총은 한반도에서 백제 초기에만 발견된다. 돌을 쌓는 방식의 무덤은 고구려의 풍습이다.

결국 백제 초기 주요 세력은 고구려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는 같은 혈통을 가진 것으로 추측한다. 방이동 고분군은 석촌동 고분군과는 다른 형태의 무덤이다. 굴식 돌방무덤으로 신라 고분으로 오해하기도 했다.

 

모두 도굴을 당해서 어떠한 유적도 남아 있지 않아 정확한 무덤 주인과 축조 연대를 알 수는 없지만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신라의 흔적을 모두 가지고 있는 무덤이다.

 

백제 초기의 무덤은 석촌동 고분군을 보면 되고 초기 이후의 무덤은 방이동 고분군을 보면 된다. 당시 한강유역은 백제뿐 아니라 신라와 고구려도 차지하고 싶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한성백제 유적지 의미

역사는 문자에 의한 기록뿐만 아니라 유적과 유물에 의해서도 전해진다. 한성지역은 삼국시대 전략적 요충지였고 가장 먼저 이곳을 점령한 백제와 관련된 유물과 유적이 가장 많다.

 

하지만 신라와 고구려도 나중에 이곳을 점령했기 때문에 두 나라의 유물도 발견된다. 이후 한반도의 가장 중요한 지역이었고 조선시대에는 인조가 청 태종에게 굴욕적인 항복을 한 장소도 석촌동이다.

 

석촌동 고분군 인근에서 삼전도비가 발견되기도 했다. 한반도에는 선사시대 이전부터 사람이 살고 있어서 유적이 아닌 곳이 없을 정도이지만 석촌동과 방이동 일대의 백제유적은 한 번쯤 관심을 가지고 관람을 할 만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 초기 백제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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