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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 가계도 // 장조(사도세자), 혜경궁 홍 씨, 순조

조선 22대 왕 정조는 장조(사도세자)의 둘째 아들이고 영조의 손자이다. 어려서 아버지의 비극적인 죽음을 목격했고 왕이 되어서도 암살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살아야 했던 왕이다.

정조는 조선시대 정상적인 왕권을 행사한 마지막 왕이다. 정조이후 왕들은 세도정치와 일제에 의해서 왕권을 행사하지 못한 허수아비 왕이었다.

 

아버지 사도세자는 영조와의 갈등으로 뒤주에 갖혀 죽었다. 세손인 정조는 할아버지 영조에 의해 양육되고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를 하였다.

 

정조는 아버지가 죄인이기 때문에 정통성에 문제가 발생했는데 영조는 이러한 것을 염려해서 졍조를 "효장세자"의 아들로 입적시켜 효장세자 아들 자격으로 즉위하게 했다.

 

효장세자는 영조의 장남이고 사도세자형이다. 세자 시절 요절해서 후손이 없었다. 정조의 생부는 사도세자이고 호적상 아버지가 효장세자인 것이다.

 

정조는 왕이 되고 나서 두명의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했다. 친부인 사도세자를 "장조"로 추존했고, 효장세자는 " 진종"으로 추존했다. 조선왕 중에서 유일하게 두 명의 아버지를 왕으로 추존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는 남편인 사도세자가 즉위하지 못했고, 아들인 정조는 호적상 자신의 아들이 아니기 때문에 대비가 되지 못했다.

 

아들인 정조때에는 대비가 되지 못해도 문제가 되지 못했지만 정조가 죽고 손자인 순조가 즉위하자 당시 왕실 최고 어른이 된 "정순왕후"는 혜경궁 홍씨를 철저하게 무시했고 심지어 남동생 홍낙임을 죽이기까지 했다.

 

손자인 순조가 결혼할 때 폐백이나 문후를 받지 못했다. 혜경궁 홍씨의 저서 "한중록"은 이러한 자신의 삶에 대한 회고록으로 순조 시대에 지어진 책이다.

 

장조인 사도세자는 어려서 무척 총명했고 아버지 영조가 늦은 나이에 낳은 자식이라 애정이 남달랐다. 하지민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인해 정신적 문제가 있었다.

 

일반인이었으면 벌써 사형을 당할 정도의 문제를 궁궐내외에서 저질렀다. 결국 아버지 영조가 자결을 명했지만 듣지 않자 뒤주에 갇혀 죽게 된 것이다.

 

순조는 아버지 정조가 급작스럽게 죽자 11살의 나이로 즉위했다. 준비 없이 그리고 너무 어린 나이에 즉위를 했는데 문제는 수렴청정을 할머니인 혜경궁 홍씨가 한 것이 아니고 정순왕후가 한 것이다.

 

정순왕후는 사도세자의 폐위를 주장한 노론 벽파출신으로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게 되자 벽파가 정권을 장악하게 된다. 이때 부터 세도정치가 등장한다.

순조가 성년이 되어서 친정을 하게 될 때에는 조정의 실권이 순조의 장인 김조순에게 있었다. 이때부터 약 60년간 조선은 안동김씨가 장악한다.

 

순조는 정치에 흥미를 잃고 모든 것을 포기한 상태로 지내다가 아들인 "효명세자"에게 대리 청정을 시킨다.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별명을 가진 효명세자는 똑똑하고 능력이 있었다.

 

정조 손자 효명세자는 세도정치를 몰아내고 왕권을 강화하는 정책을 실시했지만 안동김씨의 벽을 넘지 못하고 어느날 갑자기 죽었다.

 

할아버지 정조와 함께 독살이 되었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했다. 정조는 비극적인 상황을 극복하고 왕이되었지만 그 가족들 모두 불행한 삶을 살았다.

 

아버지 사도세자, 어머니 혜경궁 홍씨, 아들 순조, 손자 효명세자까지 어느 누구도 편안한 삶을 살지 않았다. 증손자인 헌종또한 마찬가지 이다. 헌종까지가 정조 가계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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