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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시조는 누구인가 // 온조, 비류, 우태

백제는 온조에 의해서 건국되었다는 것이 지금까지 우리가 배운 역사이다. 하지만 백제 건국과 관련된 다른 학설이 아주 많이 존재한다. 백제가 하나의 나라가 아니고 두 개가 존재했다는 학설도 있다.

 

백제 건국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커다란 공을 세운 소서노는 주몽과 결혼하기 전에 이미 우태와 결혼해서 아들이 두 명 있었다. 큰아들이 비류이고 둘째 아들이 온조이다. 우태가 사망하고 주몽과 결혼했다.

 

주몽 입장에서는 당시 커다란 세력을 가지고 있던 소서노와 결혼하면서 자신의 세력을 넓히고 고구려를 건국하는데 도움이 됐다.

 

소서노 입장에서는 주몽을 도와 고구려를 세우면 자신의 아들이 고구려를 물려받아 왕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부여에 있던 주몽의 아들 유리가 아버지를 찾아오면서 소서노의 꿈은 사라졌다.

 

유리의 등장으로 막 건국된 고구려는 분열된다. 소서노와 그 아들을 지지하는 세력과 주몽의 큰아들 유리를 지지하는 세력으로 양분된다. 결국 유리가 승리하면서 소서노와 아들인 비류와 온조는 자신들의 세력을 이끌고 남하한다.

 

이들과 같이 남하한 세력이 모두 10개의 가문이라 실제라고 한다. 비류와 온조는 위례성에 도착해서 이곳을 터전으로 국가를 건설하려고 한다. 하지만 비류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을 따르는 무리를 이끌고 미추홀에 도착한다.

 

위례성에 정착한 온조가 세운 국가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백제이다. 하지만 비류가 미추홀에서 건국한 국가도 백제라고 한다. 비류가 죽으면서 살아진 것이 아니다. 광개토대왕 때에도 존재했고 그 장소가 요서지역이었다.

 

래서 후대 학자들이 비류백제가 존재했고 그 위치는 요서지역이라는 학설을 펼쳤다. 그리고 그 학설을 증명하는 역사서들이 발굴되었다.

 

백제 요서 경략에 대해서는 학계 의견이 부분 하다. 요서지역은 중국 땅이기 때문에 한반도에 존재한 백제가 요서지역을 어떻게 다스렸는지 정확한 자료가 없기 때문이다.

 

비류와 온조가 백제를 건국했는데 비류는 중국요서지역에서 백제를 온조는 한반도 한강유역에서 각각 백제를 건국하고 통치했다는 학설이 있다.

 

광개토대왕이 영토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백제는 한반도에 존재한 백제일 경우 여러가지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삼국중에 가장 잊힌 역사가 백제의 역사이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했기 때문에 역사를 이어갔고 고구려는 우리 민족의 기상을 높였기에 우리의 역사로 생각했지만 백제는 그러하지 않았다.

 

온조, 비류, 우태

백제를 건국한 시조를 이야기할 때 온조가 세운 백제와 비류가 세운 백제를 별개의 국가로 해서 각각의 시조를 이야기하거나 이들의 아버지 우태를 백제의 시조로 하기도 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온조와 비류의 아버지가 주몽은 아닌 것이다. 어머니가 재혼을 해서 의붓아버지가 되지만 생부는 우 태이다. 그래서 백제 시조를 구태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제는 삼국 중에 가장 활발한 외교적 활동을 했고 영토도 한반도에 국한되지 않았다.

 

일본의 천황가도 백제와 연관이 되어 있고 중국의 요서 지역도 백제와 관련이 되어있다. 고구려 건국과 백제 건국에 모두 관여한 인물은 소서노이다. 주몽의 부인으로 고구려 건국에 일조를 했고 그 아들이 백제를 건국했다.

 

고구려와 백제가 건국될 때 소서노는 살아 있었다. 백제가 한반도에 건국될 당시 한반도에는 삼한이 존재했는데 백제는 삼한 중에 가장 커다란 세력인 마한 세력과 전쟁과 흡수의 과정을 거치면서 영토를 넓혀갔다.

 

초기 백제는 위례성을 중심으로 한 한강유역에 존재하는 조그마한 부족 국가 중 하나였다. 하지만 세력을 확장하면서 삼국 중에 가장 강성한 나라일 때도 있었다.

 

백제는 온조가 한강유역에 건설한 백제와 비류가 미추홀 또는 요서지역에 건국한 백제가 따로 존재했던것이 사실일 것이다.

 

그래서 백제의 시조는 온조가 되기도 하고 비류가 되기도 한다. 그리도 그들의 아버지인 우태가 실질적인 시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논란이 있는 것은 삼국중에 백제와 관련된 기록이 많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백제는 멸망한 왕조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백제의 시조는 한명이 아니다

고대사 부분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아주 빈약하다. 그리고 대부분의 역사서는 승자에 의해서만 기록된다. 백제는 신라에 의해서 멸망한 나라이다. 백제가 남긴 기록은 없다.

 

백제에 대한 기록은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그리고 중국과 일본 역사에 기록된 것들이 대부분이다. 백제는 왕조의 명칭이 백개의 가문이 건너온 것이다. 결국 백제의 시 조은 건국의 주체가 누구였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다. 온조가 시조일 수도 있지만 비류가 시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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