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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조(수양대군) 가계도 // 예종, 인수대비 그리고 성종

내가 왕이 될 상인가?라는 말로 유명한 수양대군은 조카를 몰아내고 조선 7대 국왕이 되어서 14년 동안 재위를 했다. 조선왕 중에서 영화나 드라마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다.

세조는 할아버지 태종을 많이 닮았다. 즉위 과정도 그러하고 신하의 나라가 아닌 왕의 나라를 꿈꾼 것도 태종과 비슷하다. 태종은 세종의 치세를  만들었고 세조는 성종의 태평성대를 만들었다.

세조 가계도

둘 다 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심지어 형제들까지도 죽였는데 차이가 있다면 세조는 말년에 자신의 행동 때문에 심리적인 압박과 피부병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태종은 많은 후궁과 자식을 두었지만 세조는 두명의 후궁만 두었다. 그마저 폐소용 박씨는 세조가 교수형에 처했다. 후궁도 죽인 임금이다.

 

자식은 왕자 5명과 왕녀 2명이다. 그중에서 왕비인 정희왕후와 사이에 태어난 "의경세자"와 예종"은 모두 요절했다. 의경세자는 성종의 생부이다.

 

의경세자는 세조의 장남으로 세조가 즉위하자 세자로 책봉했다. 부인은 "인수대비"인데 불행하게 20살에 요절을 한다. 아들이 두 명 있었는데 한 명은 월산대군이고 또 한 명은 훗날 성종이다.

 

의경세자가 죽자 졸지에 과부가 된 인수대비와 두 아들(월산대군, 훗날 성종)과 함께 궁에서 나오게 된다. 여기까지 보면 성종은 왕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인수대비는 대비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의경세자가 죽자 세조는 둘째 아들 해양대군을 세자로 책봉하고 세조가 죽자 예종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예종도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죽었다.

 

예종에게는 어린 아들인 제안대군이 있었지만 예종의 뒤를 있지 못했다. 여기에는 아주 치밀한 정치적 계산이 있었다. 세조의 왕비 정희왕후는 자신들이 반정을 일으킨 원인이 단종이 어려서였다고 생각했다.

 

세조와 예종이 죽고 어린 제안대군이 즉위하고 나면 다시금 피의 역사가 되풀이될 것을 염려했다. 정희왕후와 한명회 그리고 인수대비는 다음 왕을 자을산군(성종)으로 하기로 결정한다.

 

자을산군은 의경세자의 둘째 아들이다. 형인 월산대군과 함께 아버지가 죽자 궁 밖으로 나가 어머니(인수대비)와 생활을 했는데 형인 월산대군이 아닌 둘째인 자을산군이 왕이 된 것이다.

 

자을산군이 왕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당시 최고 권력가인 한명회 사위이기 때문이다. 정희왕후는 이러한 정치적 결정으로 왕실을 지키려고 했다.

 

원자인 제안대군과 형인 월산대군을 제치고 왕이 된 성종은 조선시대 세종에 버금가는 성군이 되었다. 정희왕후는 성종이 성인이 될 때까지 수렴청정을 하였는데 조선 최초이다.

남편인 수양대군이 왕이 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지원한 정희왕후는 정치에 대한 욕심과 능력이 있었던 것 같다, 수렴청정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성인이 된 성종이 친정을 할 수 있게 물러났다.

 

성종의 어머니 인수대비는 원칙적으로 대비가 될 수 없었다. 조선시대 대비는 왕비였고 아들이 왕이 되어야 얻을 수 있는 칭호이다. 인수대비는 의경세자의 세자빈이었다.

 

의경세자는 즉위하지 못했고 아들인 성종은 의경세자의 아들이 아닌 예종의 아들로 입적해서 즉위했기 때문에 호적상으로 인수대비의 아들이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인수대비는 아들인 성종에게 자신을 대비로 책봉하라고 요구했고 결국 성종은 신하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비가 되었다.

 

인수대비는 시어머니 정희왕후와 함께 조선시대 현실정치에 참여한 왕비로 기록되어 있다. 인수대비는 성종의 제1 계비 윤 씨를 폐비시켜 훗날 손자인 연산군에게 모욕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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