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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세자가 죽은 이유
한여름 삼복더위에 8일 동안 뒤주에 갇혀있던 사도세자는 결국 죽었다. 공식적으로 다음에 왕이 된다는 세자가 뒤주에 갇혀서 죽은 충격적인 일이 왕궁 안에서 일어난 것이다. 사도세자는 무슨 이유로 죽었던 것일까?
사도세자는 왜 죽었나?
사도세자는 영조의 장남이다. 영조가 40이 넘은 늦은 나이에 본 아들이라 애정이 남달랐다. 1999년 공개된 사도세자 묘지문은 영조가 직접 작성했다.
아들에 대한 안타까움과 아버지의 비통함을 표현한 묘지문을 보면 영조가 사도세자를 사랑했고 죽음에 이르게 한 것에 대한 후회와 당위성에 대해서 글로 남겼다. 사도세자가 왜 죽었는지에 대한 가설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사도세자 자신의 문제였고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였다. 묘지문을 보면 사도세자가 미치광이가 되었다는 문구가 있다. 사도세자는 무려 13년간 아버지를 대신해서 대리청정을 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신료들과 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이때 사도세자의 정신적인 문제가 발생했고 궁궐 내에서 살인과 폭행 같은 퍠륜적인 행위를 하기 시작했다.
사도세자 주변인들은 이러한 것을 숨기려고 노력했지만 너무 자주 발생하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태가 되어 결국 뒤주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 사도세자가 죽은 이유 중 하나다. 또 다른 하나는 정치적인 이유이다.
영조는 즉위 과정에서 노론의 절대적 지지로 즉위했다. 반대세력이 지지한 경종의 의문스러운 죽음에 영조와 노론이 깊이 관련이 되어 있다는 것 때문에 평생을 힘들어했다.
그래서 탕평책을 실시했다. 사도세자가 대리청정을 하는 동안 노론과 끊임없이 갈등을 했다. 심지어는 적대적인 관계로 이어져 노론세력이 의도적 음해로 사도세자가 죽었다. 두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발생해서 사도세자가 죽었다는 것이 일반적인 학설이다.
사도세자 후손들
사도세자가 죽고 나서 아들인 정조가 즉위했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을 직접 지켜보았다. 아버지 묘를 화성으로 옮기고 왕으로 추존했다. 장조가 추촌 왕 묘호다.
그리고 고종 때 대한제국이 수립되고 다시 황제로 추존되었다. 사도세자는 죽어서 황제가 된 것이다. 사도세자는 정조 이외에도 3명의 아들이 있었다. 22대 국왕 정조부터 27대 순종까지 모두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왕이 되었다.
정조 이후 아들인 순조와 순조의 손자인 헌종은 적통으로 왕위를 이어갔고 헌종이 후사가 없자 사도세자의 다른 아들 은언군의 손자가 25대 철종이 된다.
철종 또한 후사가 없자 은언군의 형 은신군의 증손자가 고종이 된다. 사도세자는 죽어서 왕이 되었고 후손들은 조선의 왕이 되었다.
물론 은언군과 은신군은 역모에 연루되거나 다른 사건에 연루되어서 곤욕을 치루지만 대체로 나머지 후손들은 무탈했고 조선왕조마지막 왕까지 사도세자의 후손들이 되었다.
사도세자는 억울하게 죽은 것인가?
영화와 드라마를 보면 사도세자는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억울하게 죽는 것으로 묘사되었다. 아버지의 억울한 죽음을 목격한 아들인 정조는 효를 다하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는다.
드라마틱하지만 사실 일반인이 사도세자와 같은 패륜을 저질렀으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만일 일반 백성이 사도세자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으면 사형을 당했을 것이다.
패륜행위 하나만 놓고 본다면 사도세자는 억울하게 죽지 않았다. 죄에 대한 벌을 받은 것이다. 어쩌면 세자이기 때문에 많은 특혜를 받았을지도 모른다. 조금 더 극적인 장치를 위해서 사도세자의 죽음이 미화됐을 뿐 사도세자의 죽음은 억을 하지 않는 죽음이다.
사도세자는 자신이 잘못한것을 뉘우쳤는지는 모르지만 아들인 정조와 남은 가족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야 했다. 물론 사도세자도 행복했다고 할 수는 없다.